운흥정은 시계의 기금으로 시회를 여는 장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정자의 건물을 정면3칸과 측면2칸의 규모로 안쪽에 다른 기둥을 세운 팔작 기와지붕의 건물입니다.
정자 근처에는 용연이라 불리는 물웅덩이가 있으며 기암괴석이 많이 있는데 정자 아래쪽 서벽에 운흥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기도 합니다.
정자 안에는 80여개의 시문을 담은 현판이 걸려 있는데 1930년에 이도복이 쓴 운흥정기에 보면 정자의 내력에 관한 글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산동 출신의 박해창이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내려와 효도를 근본으로 삼고 여생을 보내면서아버지의 묠르 관리하고 지역의 선비들과 교류를 하였습니다.
지역의 선비들과 함께 시계르 ㄹ만들과 시회를 열어 인간의 도리와 충효를 노래하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운흥정은 1984년 2월 29일에 전남 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운흥정으로 가기전에 있는 문효공 경제 하연선생의 유적비입니다>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을 할때 걸어갔다는 백의종군로입니다. 구례군에서 걷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다리를 건너가면 운흥정을 만나게 됩니다>
<다리를 건너면 만나는 운흥정입니다>
<시를 적은 현판이 운흥정 내부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
<운흥정 옆에 핀 동백나무꽃이에요>